사출기 교체 검토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 있다. 구매 부서는 설비별 카탈로그를 펼쳐 놓고 정격소비전력이나 모터 용량을 비교한다. 한쪽은 정격 수치가 낮고, 다른 쪽은 높다. 그러면 낮은 수치의 설비가 당연히 전력비도 적을 것이라는 결론으로 흐르기 쉽다. 그러나 실제 양산에 들어간 뒤 월별 전력 사용량과 생산 실적을 맞춰 보면,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출기는 성형 사이클 내내 같은 전력을 쓰지 않는다. 형체를 잠그고 고압으로 사출하는 구간에서는 부하가 커지지만, 보압 단계에서는 조건에 따라 부하가 달라진다. 스크루 가소화가 언제, 얼마나 오래 진행되는지도 영향을 준다. 냉각 시간에는 설비가 다음 동작을 기다리는 상태에 놓이고, 이때도 유압·서보 구동 방식, 히터 제어 방식, 주변 장치의 운전 상태에 따라 전력 사용 패턴이 달라진다. 정격소비전력은 이런 구간별 차이를 평균 내어 보여주는 숫자가 아니다. 설비가 특정 조건에서 낼 수 있는 최대 수준에 가까운 정보를 제공할 뿐이다.
전력은 설비가 아니라 성형 조건이 만든다
같은 톤수의 사출기라도 금형이 달라지면 전력 원단위는 크게 달라진다. 얇은 제품을 짧은 시간에 성형하는 금형은 사출 속도와 가소화 능력이 중요할 수 있고, 두께가 있는 제품은 냉각 시간이 길어져 대기 구간의 비중이 커질 수 있다. 난연재나 유리섬유 강화재처럼 가소화에 더 큰 부하가 걸리는 수지를 쓰면, 같은 제품 중량이라도 전력 사용 양상이 달라진다. 금형의 냉각 회로 상태가 좋지 않아 사이클이 몇 초만 늘어나도 설비 본체뿐 아니라 냉각기, 건조기, 온도조절기 등의 운전 시간이 함께 늘어난다.
그래서 비교의 출발점은 ‘이 설비의 정격이 몇 kW인가’가 아니라 ‘우리 금형과 우리 수지, 우리 목표 사이클에서 한 시간 동안 실제 몇 kWh를 쓰는가’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도 단순 시간당 소비전력만 보면 부족하다. 설비 A가 시간당 전력을 조금 덜 쓰더라도 사이클이 길거나 불량률이 높아 시간당 양품 생산량이 낮다면, 양품 1개당 전력비는 더 높을 수 있다. 반대로 순간 전력은 다소 높아 보여도 사이클 단축과 안정적인 양품 생산이 가능하면 kWh당 생산량은 더 좋아질 수 있다.
이 판단은 전력계 하나를 달아 짧게 시험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열 직후의 상태, 안정화 이후의 상태, 재가동 직후의 상태는 서로 다를 수 있다. 특히 히터 부하와 가소화 조건은 수지 건조 상태, 배럴 온도, 현장 온도에 영향을 받는다. 생산 중 금형 청소나 원료 투입, 조건 보정으로 멈추는 시간까지 포함할 것인지도 투자안 간에 같은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 설비 본체 전력만 볼지, 해당 성형에 필수인 건조·냉각·온조 설비까지 포함한 셀 단위 전력을 볼지도 원가 목적에 따라 분명히 해야 한다.
비교 단위가 바뀌면 판단도 달라진다
현장에서 의미 있는 지표는 대개 ‘양품 1개당 kWh’ 또는 ‘양품 1kg당 kWh’다. 다품종 생산이라면 대표 금형 몇 개를 선정해 각 품목의 물량 비중을 반영한 가중 평균을 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이때 금형별 목표 사이클, 캐비티 수, 제품 중량, 수지 종류, 허용 불량 기준을 고정하지 않으면 비교 결과는 쉽게 왜곡된다. 한 설비에는 느슨한 조건을 적용하고 다른 설비에는 공격적인 조건을 적용한 시험은 전력 측정처럼 보여도 투자 판단 자료로 쓰기 어렵다.
전력 단가를 곱하는 단계도 마지막에 와야 한다. 먼저 실제 조건에서의 kWh당 양품 수량을 확인하고, 그 차이가 연간 생산량에서 얼마의 전력 사용량 차이로 이어지는지 계산해야 한다. 그래야 전력 절감 효과가 설비 가격 차이, 유지보수비, 생산성 변화와 비교할 수 있는 원가 항목이 된다. 정격소비전력은 후보를 좁히는 참고 정보로는 유용하다. 다만 그것만으로 월 전력비나 투자 회수기간을 산정한다면, 설비의 능력을 비교하는 숫자와 생산 원가를 판단하는 숫자를 혼동하게 된다. 구매자가 끝까지 확인해야 할 것은 낮은 정격이 아니라, 실제 생산 현장에서 전력 1kWh가 몇 개의 양품으로 바뀌는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