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총액보다 먼저 봐야 했던 것은, 그 금액 안에 무엇이 빠져 있는가였다.
맨 아래 금액만 보고 고른 견적
견적을 여러 장 펼쳐 놓으면 유독 눈에 들어오는 숫자가 있다. 다른 곳보다 한참 낮은 금액이다. 처음에는 그 업체가 물량을 많이 해서 싸게 낸다고 생각했다. 요구한 설비도 같아 보였고, 외관 사진도 비슷했다. 내부 결재를 올릴 때도 설명이 쉬웠다. 같은 설비인데 이쪽이 훨씬 싸다는 말만 남았기 때문이다.
계약 뒤에야 그 ‘같은 설비’라는 전제가 틀렸다는 걸 알았다. 처음 견적에는 설비 본체만 있었고, 현장에 와서 실제로 돌리려면 필요한 것들이 바깥에 남아 있었다. 설치 인력의 체류 조건, 시운전에 쓸 자재, 현장 전원과 배선의 연결 범위, 예비품, 교육 시간이 문장 하나씩으로 빠져 있었다. 처음에는 작은 차이처럼 보였는데, 하나가 빠진 견적은 다음 빠진 항목을 부르는 식이었다.

가격 차이는 대개 사양의 가장자리에서 났다
낮은 견적을 다시 보면 핵심 성능 수치가 틀린 경우보다 범위가 좁은 경우가 많았다. 처리량은 적혀 있는데 어떤 원료 기준인지 없고, 자동 운전이라고 적혀 있는데 사람이 계속 붙어야 하는 구간은 설명되지 않았다. 도면에 있던 부속 장치는 견적서의 공급 범위에서 빠져 있기도 했다. 견적의 한 줄과 제안 자료의 사진을 같은 뜻으로 읽은 쪽이 손해를 봤다.
부품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모터나 제어 부품의 이름보다 설비 전체 가격이 더 크게 보인다. 그런데 설치가 끝난 뒤 문제를 일으키는 건 대개 그 안쪽 선택이었다. 어떤 등급의 부품이 들어가는지, 대체 가능한 품목인지, 현지에서 바로 구할 수 있는 소모품인지가 견적에 안 보이면 비교가 끝난 게 아니었다. 한 곳은 처음부터 그 내용을 적어 보냈고, 그 견적은 비쌌다. 대신 나중에 무엇을 따로 사야 하는지 추측할 일이 적었다.
‘포함’이라는 말도 범위를 다시 물었다
설치 포함이라는 문구도 한 번은 믿고 넘겼다가 일이 커졌다. 장비를 내려놓고 조립하는 것까지인지, 배관과 전기 연결까지인지, 시험 생산을 거쳐 목표 조건을 잡아 주는 것까지인지가 전부 달랐다. 현장 담당자가 떠난 뒤 남은 작업을 우리 쪽에서 이어받게 되면, 설비 가격이 낮았던 이유가 그때 드러난다.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질문도 시차와 통역을 거치면 하루가 지나갔다.
반대로 처음부터 설치 경계와 시운전 종료 조건을 길게 맞춘 건 편했다. 협의할 때는 답답할 정도로 느렸지만, 현장에서 누가 무엇을 할지로 실랑이할 일이 없었다. 견적서에 적힌 금액이 높았다는 사실보다, 그 금액으로 어디까지 끝나는지가 더 선명했다.
싼 견적을 버릴 이유는 아니었다
낮은 가격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실제로 필요한 구성이 단순하고, 현장 설치와 유지보수를 우리 쪽에서 맡을 수 있다면 본체 위주의 견적이 더 맞았다. 불필요한 옵션을 잔뜩 넣은 비싼 견적보다 훨씬 잘 산 경우도 있었다. 다만 그 선택은 빠진 것을 알고 뺀 선택이어야 했다.
이후에는 견적 금액을 묻기 전에 그 가격이 가능한 이유부터 설명해 달라고 했다. 공급 범위, 성능 조건, 주요 부품, 설치와 시운전의 끝 지점을 같은 문서 위에 놓고 봤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면 빠진 항목은 협상거리가 아니라 추가 비용이 된다. 그 전에는 낮은 숫자가 기회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누가 그 빈칸을 메울지의 문제가 남는다.
KEY INSIGHT 유독 낮은 견적은 가격 경쟁력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같은 범위를 비교하지... 눌러서 전체 보기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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